억울함 앞에서 외면할 수 없었다
감독: 양우석
출연: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임시완, 이성민
장르: 드라마, 법정, 시대극
개봉일: 2013년 12월 18일
러닝타임: 127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980년대 초 부산. 뺵 없고, 돈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든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 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립니다.
10대 건설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 앞에 둔 송변.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송변.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변은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하는데...
"제가 하께요,변호인. 하겠습니더."
독서 자체가 죄가 되던 시대의 부당함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부림사건은 독서모임 자체를 '공산주의 사상 선동'으로 왜곡하여 조작한 사건입니다.
1981년 9월 부산지역 대학생, 지식인, 회사원 등이 사회과학과 정치철학 관련 서적을 읽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 군사정권이 이런 모임을 사회주의, 반국가 활동으로 간주했습니다.
안기부는 사전 영장 없이 모임 참여자 22명 전원을 불법으로 체포했고
밤샘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심각한 고문을 자행해 강제로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가족조차 소재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수일간 감금을 하며 벌여 온 일이었습니다.
1981년 말 안기부는 이 사건을 '부산 지역 프락치 조직 적발'이라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발표했고
부산과 울산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사건명을 부림사건이라고 명명했습니다.
1982년 검찰은 국가보안법 및 집단행동 금지 위반 등으로 기소하였고
피고인들은 고문으로 강제된 허위자백 외에는 마땅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노무현, 김광일 등 변호인단은 '독서와 토론이 죄가 될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유죄가 확정되었습니다.
변호인단은 사건 초기부터 끝까지 피고인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활동했습니다.
공안당국의 허위 자백 강요, 불법구금, 고문 사실을 법정에서 끈질기게 폭로했고
당시 언론과 여론의 냉담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형식적 법 논리보다도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기반으로 논리를 펼쳤는데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그리고 '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당시 많은 변호사들이 공안사건을 회피하거나 비협조적이었지만
변호인단은 국민의 기본권을 위해 기꺼이 권력과 충돌했고
이로 인해 정치적 불이익, 경력 손해, 사회적 압력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또한 재판 외에도 구속된 피해자 가족들에게 정보를 전달했으며
위로와 심리적 지원도 제공하여 사회적 연대 형성의 출발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부림사건의 변호인단은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받은 시민을 위해 국가권력과 맞선 인권 변호사 그룹이었으며
특히 노무현 변호사는 이 사건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철학을 갖게 되었고
후에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학업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퇴직해야 했고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로 정신적 외상과 생계 위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언론과 사회는 침묵했으며 피해자들은 30년 넘게 이 사건을 떠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피해자들이 잇따라 재심을 청구했고
2014년 부산고등법원은 전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015년 5월 대법원도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고
사법부는 '피고인들의 진술은 고문으로 강요된 것이며 위법한 수사에 따른 유죄 판결'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980년대의 대한민국은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받았으며
국가가 강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했으며 증거를 조작했고 편향된 재판이 이루어지는 나라였습니다.
부림사건은 민주주의 원칙의 심각한 훼손을 일으켰고
한국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국가조작, 인권침해 사건이며
표현의 자유, 재판의 공정성, 고문 근절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침묵을 깨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영화와 실제 사건은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22명이 연루되었으나
영화에서는 극적 집중을 위해 1명으로 축소되어 스토리가 진행되었고
변호사 구성 또한 실제로는 노무현 변호사를 포함한 5명의 변호인이 참여했지만
영화에서는 송우석 변호사 한 명이 모든 역할을 수행합니다.
극적인 감정 몰입을 위해 주인공의 가치관은 단기간에 변화했지만
실제로 노무현 변호사는 점진적으로 인권 변호사로 변모했으며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과 몰입감을 조성했던 법정 장면에서도
실제 발언이 재현되기도 했지만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각색된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법은 지켜야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사람의 권리와 자유 아닙니까?"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습니다.
이 대사는 노무현 변호사가 평소 강조했던 가치관과 정신을 요약해 놓은 창작 대사라고 합니다.
실제 노무현 변호사는 재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생각의 자유, 말할 자유, 믿을 자유입니다."라고 발언했다고 합니다.
역사적 진실이 복권되기까지 걸린 수십 년 동안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2014년 재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 됐을 때 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진실은 멈추지 않습니다. 늦었지만, 진실은 끝내 이깁니다."
피해자들의 망가진 인생은 그 누구도 국가도 보상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변호인은 법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며 진짜 국가는 국민 편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재판 마지막 날 법원 밖에서 시민들이 말없이, 피켓 없이, 구호도 없이
단지 그 자리에 함께 존재함으로써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시 1980년대 억압적 시대 속에서도 '희망은 사람들 안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정의는 혼자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뤄내는 것을 잘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언론과 여론의 침묵 속에서 정의를 외치는 용기가 있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