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한 희생 그날의 용기
감독: 김학순
출연: 김무열, 진구, 이현우
장르: 드라마, 밀리터리
개봉일: 2015년 6월 24일
러닝타임: 130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 6월
해군 출신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대위.
아내의 든든한 남편이자 참수리 357호 조타장 한상국 하사.
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참수리 357호 의무병 박동혁 상병
참수리 357호 대원들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고된 훈련 속에 서로를 의지하며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갑니다.
무더운 여름과 함께 월드컵의 함성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경기가 열리던 그날 서해 바다 한가운데에 포성이 울리는데...
희생을 품은 바다, 바다는 기억하고 있다
이 영화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제2연평해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전투는 불시에 공격을 감행한 북한의 선제 사격으로 시작되었으며
우리 해군의 용감한 대응 속에 많은 희생을 남긴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2002년 6월 29일 당시 대한민국 전역은 한일 월드컵 3,4위전을 앞두고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설정된 실질적인 해상 군사분계선
즉 북방한계선 NLL을 인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발하던 북한은
결국 이 날 오전 6시 55분 경비정 2척이 서해 NLL을 침범했습니다.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과 PKM325정이 대응하여 차단 기동 하였습니다.
오전 9시부터 10시 사이 북한 경비정은 3~4회에 걸쳐
NLL 침범과 퇴각을 반복하는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우리 해군은 무력 충돌 방지를 위해 통신 경고 및 함포 사격 없이 감시와 기동 대응에 집중했습니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684정이 갑자기 근접 거리에서 참수리 357정에 선제 함포 사격을 합니다.
첫 포탄이 357정 조타실에 직격 하여 윤영하 소령 포함 지휘부가 중상을 입게 됩니다.
오전 10시 26분에서 10시 29분 3분 동안 참수리 357정은 손상된 상태에서 반격을 시작했고
PMK325정과 인근 속초함이 즉각 대응사격을 시작했습니다.
양측은 수분 간 치열한 교전을 했고 357정은 선체에 100여 발 이상 명중을 당해
화재가 발생하게 됐고 침수가 심화 됐습니다.
10시 45분경 북한 경비정 684정은 퇴각하여 연평도 북방으로 이탈했고
357정은 계속된 화재와 침수로 결국 격침되고 말았습니다.
북한군 사상자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심각한 피해를 입고 퇴각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우리 해군은 즉각 구조 활동을 돌입했으나 해군 전사 6명, 부상 18명으로 확인됩니다.
윤영하 소령 지휘관이며 조타실에서 전사헀습니다.
한상국 상사는 끝까지 배를 지키며 전사하였고
조천형 중사는 화재 진압 중에 전사하였으며
황도현 중사는 조타실에 전사
서후원 중사는 구조 활동 중 사망했으며
박동혁 병장은 부상 후 병원에서 순직했습니다.
사건 당일 정부와 군 당국은 사건 발생 직후 언론 공개를 자제했습니다.
전투가 끝난 뒤에도 몇 시간 동안 언론 발표가 없었고
국민 대다수는 월드컵 3,4위 전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희생된 장병들에 대한 관심도 부족했으며
대중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전사자들을 위한 국가장이나 공식적인 영결식이 당시에 없었으며
유족들에게 충분한 심리적 또는 정서적 지원도 부족했고
국가적 추모 분위기가 거의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연평해전이 발생한 날 축구 경기를 관람 중이었으며
공식적 사과나 직접 위문이 없었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부와 군 지휘부의 초기 대응은 너무나 미흡했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지 않아 논란이 됐습니다.
전사자들에 대한 무공훈장 수여, 순직자 지정도 비교적 늦게 진행되었고
그마저도 명예의 격이 낮았다는 평가였습니다.
유족들의 요구로 재조명된 후에야
2010년 이후부터 본격적인 명예 회복과 추모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사건 발생 8년 후인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에 연평해전이 재조명되면서
그제야 공식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2016년 국방부 주도로 '서해 수호의 날'로 제정되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들을 너무 늦게 알아봤다'는 자책과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는데
영화 '연평해전'이 이들의 희생을 제대로 알리고 기억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
영화 연평해전은 실제 사건과 비교해봤을 때
영화 속 등장인물인 각 장병의 개인사와 심리 묘사를 나타내는 장면 중
일부 장면을 극적 구성 했을 뿐 대부분이 실제 사실과 거의 동일합니다.
북한의 반복적인 도발로 긴장감 고조를 묘사한 것
그리고 영화에서 냉철하고 묵묵한 지휘관으로 묘사된 윤영하 소령은
실제로도 부하들이 전투 중에 리더십을 극찬한 인물이었으며
먼저 쏘면 안 된다는 군 내부의 분위기를 부각 시켰는데
이것 또한 실제로 교전 규칙상 선제 대응이 금지되어 있으며
전투 장면을 본 생존자들도 매우 사실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사건 이후 국민의 무관심을 간접적으로 묘사했는데
실제로도 월드컵 열기 속에 잊혔던 전투였습니다.
극적 연출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박동혁의 사망 뒤에 만약 교전이 없었다면
357 승조원들의 그날 밤은 어땠을까라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축구 경기를 즐기며
대표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위주로 감상하기보다는
그날 연평도 바다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장병들을 알고
기억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전투가 끝난 후 구조 된 병사들이 부상당한 채 후송되며,
이들이 정신을 잃은 채 들것에 실려 가는 장면이 나온 뒤
이어서 전사한 장병들의 실명, 계급, 나이가 자막으로 하나씩 천천히 올라옵니다.
그리고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그들은 조국을 지켰지만, 우리는 그들을 너무 늦게 기억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문장이었습니다.
뒤이어 장면이 전환되고 군인 장례식과 유족들의 눈물
그리고 끝까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싸운 장병들의 유품 등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엔딩은 눈물보다 침묵과 기억 그리고 반성에 가깝습니다.
국군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늦게 알았지만
지금부터라도 기억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무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