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양심 사이의 고요한 전쟁
감독: 윤종빈
출연: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장르: 드라마, 첩보
개봉일: 2018년 8월 8일
러닝타임: 137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북으로 간 스파이, 암호명 흑금성
1993년,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됩니다.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된 박석영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의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습니다.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과 대통령 외에는 가족조차도 그의 실체를 모르는 가운데
대북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북고위간부 리명운에게 접근한 흑금성.
그는 수년에 걸친 공작 끝에, 리명운과 두터운 신의를 쌓고
그를 통해서 북한 권력층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1997년. 남한의 대선 직전에 흑금성은 남과 북의 수뇌부 사이 은밀한 거래를 감지합니다.
조국을 위해 굳은 신념으로 모든 것을 걸고 공작을 수행했던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갈등에 휩싸이는데...
속삭이는 진실, 무너진 신념
이 영화는 '흑금성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1955년생 박채서는 육군 제3사관학교 출신으로 장교 생활 후에
국군정보사령부 소속으로 대북 첩보 활동을 한 인물입니다.
북한과의 접촉 과정에서 사용된 코드네임이 '흑금성'이었는데
북한 고위층과 접촉하여 남북경협, 무기 수출입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대북 비밀공작을 수행했습니다.
1990년대 초 박채서는 대북 사업을 가장하여 중국과 제3국을 통해 북한과 경제 협상을 시도했고
실제로 북한 고위 간부들과 직접 접촉했으며 북한 내부 핵심 정보 수집을 목표로 활동했습니다.
1997년 북한 노동당 고위층과 만나 경제 협력 사업을 논의했고
김정일과도 면담 가능성까지 열리게 됐습니다.
북한과의 접촉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물밑 작업에도 간접적으로 연결 되어 있었습니다.
1998년 '총풍사건' 수사 중, 흑금성의 정체가 외부에 드러나게 됩니다.
총풍 사건은 1997년 대선 직전에 일부 보수계 정치인 및 정보요원들이
당시 북한에 무력도발을 요청했다는 의혹이 나왔고
그 목적은 안보 위기감을 조성해 여권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정치공작이었습니다.
결국 1998년 수사 결과 일부 인사들이 북한 측에 무력 도발을 요구한 정황이 드러나게 된 사건입니다.
당시 박채서는 1997년 당시 북한과의 물밑접촉 루트를 실제로 운영하고 있었고
이 루트를 통해 일부 정치세력이 북한 측에 도발을 요청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박채서는 이를 저지하고 상부에 보고했지만 오히려 내부 고발자로 몰리게 되었고
결국 총풍과는 별개의 정보공작선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이 사건이 수면 위로 오르며 흑금성의 신분이 노출된 것입니다.
흑금성 박채서는 정보사 내부 고발자 역할을 하면서 내부 문제가 불거졌고
이후 국방부는 박채서를 체포, 대북공작 실패 책임을 물어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합니다.
박채서는 상부의 지시에 따른 정당한 공작활동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국방부는 임무를 넘어선 독자 행동을 했으며
북한과의 접촉에서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문제 삼았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돌리기 위한 희생양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결국 박채서는 2010년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징역형이 선고 되었습니다.
2016년 복역 후 출소한 이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 매체 인터뷰 및 증언을 이어갔고
2018년 영화 '공작'으로 이 사건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당시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정보공작이 희생양처럼 이용된 사례로
충성스러운 공작원이 국가로부터 외면받고 죄인이 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적 속으로 향한 한 사내의 고독
영화 '공작'은 내부 정치 공작의 이면을 알게 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냈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북측의 고문과 회유를 견디며
묵묵히 서류에 서명하지 않는 장면은 상당히 강렬한 느낌을 주었고
북측 고위간부 역을 맡은 이성민의 "우리는 조국을 위해 싸웠다"는 대사는
이념을 넘어선 인간성과 신념을 되묻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간첩이냐, 애국자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국가란 무엇인가 충성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했습니다.
박채서의 희생과 선택은 단순히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에서 너무도 무겁게 존재했던 진실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흑금성의 정체와 활동이 알려졌을 때는
'기밀 누설자', '간첩혐의자' 로서 비판적 시선이 우세했으나
2010년대 이후 재평가가 시작됐고 특히 영화 '공작' 개봉 이후에
여론은 '국가를 위해 일했지만 국가가 버린 사람'이라는 동정론이 우세했습니다.
현재는 냉전 시대의 희생자,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말린 내부 고발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충성을 요구할 땐 '애국자'였지만 권력에 불리해지자 '범죄자'가 되었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입니다.
흑금성 사건을 둘러싼 국가의 모순, 그 안에서 침묵하고 견딘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란 과연 누구를 위한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떠올렸고
우리 모두에게 정치적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기록이자 경고하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