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싸움
감독: 김태윤
출연: 박철민, 김규리, 윤유선, 박희정, 이경영
장르: 드라마
개봉일: 2014년 2월 6일
러닝타임: 120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스무 살 여린 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한 아버지의 인생을 건 재판이 시작됩니다.
택시기사 상구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아버지입니다.
상구는 딸 윤미가 대기업에 취직한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한편으론 넉넉치 못한 형평 때문에 남들처럼 대학도 보내주지 못한 게 미안합니다.
오히려 기특한 딸 윤미는 빨리 취직해서 아빠 차도 바꿔드리고 동생 공부까지 시키겠다며 밝게 웃습니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윤미는 큰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 품을 떠났던 딸이 이렇게 돌아오자 상구는 가슴이 미어집니다.
"왜 아프다고 말 안 했나?"
"좋은 회사 다닌다고 자랑한 게 누군데! 내 그만두면 아빠는 뭐가 되나!"
자랑스러워하던 회사에 들어간 윤미가 제대로 치료도 받을 수 없자,
힘없는 못난 아빠 상구는 상식 없는 이 세상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상구는 차갑게 식은 윤미의 손을 잡고 약속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난 내 딸, 윤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아빠가... 꼭 약속 지킬게"
반도체 공장 무균실의 진실
이 영화는 '삼성 황유미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산업재해와 직업병 문제,
특히 반도체 산업 내 유해물질 노출 문제를 공론화시킨 상징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kbs 추적 60분에서 2010년 5월 19일 '나는 일터에서 암을 얻었다.'
2011년 1월 26일 '삼성, 직업성 암 논란 다시 불붙다' 편으로 두 차례에 걸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황유미 씨를 비롯하여 황유미 씨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이수경 씨, 그리고 박지연 씨 등 다양한 피해자들의 사례를 다뤘습니다.
황유미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2003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생산라인에 입사했습니다.
주로 웨이퍼 세척과 노광 작업을 담당했는데
입사 2년 만인 2005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습니다.
이후 장기 투병했으나 결국 2007년 3월 6일 향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딸의 죽음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 환경이 원인일 수 있다고 보고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민간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와 함께 10년에 걸친 싸움을 이어갑니다.
황유미 씨 사건 이후, 삼성 반도체 라인에서 일하던 여러 명의 백혈병 또는 암 환자가 추가로 밝혀졌고
산업보건 전문가들은 방진복 안에서 유해화학물질에 장시간 노출된 점과
공장의 환기 문제 그리고 일상적인 야간 근무와 교대근무 등을 지적했습니다.
2009년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 인정을 거부했고
이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2011년 서울행정법원에서 황유미 씨에 대해 산재 인정을 판결합니다.
2014년 대법원이 산재 인정을 최종 확정했고 이후 다른 피해자들의 산재 인정도 잇따랐습니다.
2014년부터 2018년의 긴 소송 끝에 삼성과 반올림, 즉 피해자 유족 간의 조정과 갈등이 지속됐으나
2018년 11월 23일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분들과 가족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배보상위원회를 설치했고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습니다.
대기업 그리고 청정산업이었던 반도체 산업의 그늘을 처음 드러낸 사건이었으며
이후 시민단체, 언론, 영화계가 함께 대응하는 등 산재 피해자 권리운동확산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 끝내 지킨 진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법적 문제와 인물 보호 또한 극적 구성을 위해
가공의 회사인 '주홍전자'와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실제와는 다르게 각색했습니다.
삼성 측의 압력 논란과 상영관 제한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상영이 이어졌던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국내 최초로 대기업 삼성을 정면 비판한 상업 영화입니다.
영화의 제목 또한 삼성의 광고 문구 '또 하나의 가족'을 비틀어 풍자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건과 거의 동일한 정황을 따르지만
결말이나 전개는 관객에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연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전개되어 눈물을 억지로 끌어내는 장면은 없었기에
오히려 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는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따라가면서
이 사회에서 약자가 어떻게 버텨내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기록 같았습니다.
그냥 조용히 사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에
"그렇게 조용히 살았으면, 내 딸도 죽지 않았을 거다"라는 대사는 아직도 여운이 남습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용기가 만들어낸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끝내 누군가는 말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