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이 죄인이 되어야 했던 시간
감독: 정지영
출연: 설경구, 유준상, 진경, 허성태, 염혜란
장르: 드라마, 사회고발
개봉일: 2023년 11월 1일
러닝타임: 124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무슨 수사여? 똥이제!
1999년 전북 삼례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의 수사망은 단번에 동네에 사는 소년들 3인으로 좁혀지고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내몰린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 수감됩니다.
이듬해 새롭게 반장으로 부임 온 베테랑 형사 황준철에게 진범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고
그는 소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재수사에 나섭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의 책임 형사였던 최우성의 방해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황반장은 좌천됩니다.
그로부터 16년 후 황반장 앞에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윤미숙과 소년들이 다시 찾아오는데...
진실 없이 유죄였던 그 시절
영화 '소년들'의 모티브가 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의 한 슈퍼마켓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입니다.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경,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하여
잠자고 있던 76세의 유모 할머니를 질식시켜 숨지게 하고
현금과 귀금속 등 약 254만 원 상당을 탈취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 발생 9일 만에 인근에 거주하던 19~20세의 청년 3명
최대열, 강인구, 임명선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지적장애가 있거나 사회적 약자로
경찰의 강압 수사와 폭행 그리고 협박에 의해 허위 자백을 하게 되었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기소하여 각각 3년 6개월에서 5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0년 부산지검은 마약 수사 과정에서
진범으로 추정되는 '부산 3인조'를 검거하여 자백을 받았으나
사건을 넘겨받은 전주지검은 자백의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1999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피해자가 고령의 여성이라는 점과 '3인조 강도'라는 자극적인 보도에 힘입어
'청년 3명이 범인'이라는 수사기관 발표가 비교적 순순히 받아들여졌고
대중적 의심이나 논란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사건의 진범으로 보이는 '부산 3인조'가 자백한 이후에도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고
억울한 누명을 쓴 청년들이 출소한 뒤에도 사회적 관심을 미비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재심'이라는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활용이 낮았고
오심이나 강압수사에 대한 문제의식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론이 변하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박준영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아 재심 청구를 준비하고
언론과 다큐멘터리, 특히 KBS '추적 60분' 등의 보도를 통해 이 사건이
'단순한 강도치사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부가 만든 억울한 희생자'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점차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나라에서 사람 하나 망가뜨리는 건 순식간이다'
'진범 자백이 있어도 안 믿는 검찰이라니...'와 같은 분노와 허탈, 그리고 제도 개혁 요구가 확산됐습니다.
이후 2016년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심이 이루어졌고
2016년 10월 28일 전주지방법원은 세 청년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며
검찰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약촌오거리 사건, 익산 약촌파출소 사건 등과 함께 대표적인 한국형 오심 사건으로 회자되며,
한국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내 재심 제도의 개선, 수사기관의 강압수사 방지,
진범 자백의 증거능력 강화 등의 제도적 논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사법 정의와 인권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후 유사한 오심 사건에 대한 관심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끝내 밝혀진 진실의 무게
영화 '소년들'은 1999년의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실화 기반 영화입니다.
영화는 사건의 핵심 구조와 전개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장소와 인물, 세부 상황은 허구적으로 재구성해 법적 명예훼손을 피하고
보편적인 감정 전달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재심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사기관의 직무 유기, 검찰의 무관심
그리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강조했으며 경찰 내부에서도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줘
반성과 저항이 함께 묘사되었습니다.
단순히 실제 사건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인권과 정의 그리고 책임이라는 질문을 꺼내 들며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 냈으며
실제 사건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더 깊은 감정적 몰입이 가능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폭력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은 17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적 명예를 회복하고
2021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와 당시 수사 검사에게
총 15억 6천여 만원의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공무원들이 위법한 수사로 무고한 시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며
이러한 불법행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억울한 수감 생활을 마친 후에도 사회적 낙인과 트라우마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최대열 씨는 수감 중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모친은 아들의 누명으로 인한 충격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저 때문'이라며 깊은 죄책감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또한 임명선 씨는 '감옥에서의 시간보다 출소 후의 시간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며
오랜 시간 동안 불면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살인자'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으며
지역 사회에서의 편견과 차별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로의 복귀가 어려웠습니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유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이 지속될 수 있게 도와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