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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지켜주지 않는 사회의 민낯

by hanulzzinggu 202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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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는 왜 아이를 지키지 못했는가

감독: 정주리

출연: 김시은, 배두나

장르: 드라마, 사회고발

개봉일: 2023년 2월 8일

러닝타임: 138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나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합니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습니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시스템은 왜 또 한 명을 희생시켰나

영화 '다음 소희'의 모티브가 된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은

2017년 1월 23일 전북 전주에 있는 KT 협력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특성화고 여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특성화고 정보통신과 3학년인 여학생 A양은 졸업을 앞두고 콜센터 실습에 배정되었는데

실습처는 KT 협력업체로 영업성 통신 상품 판매 및 상담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었습니다.

원래 A양의 전공과는 무관한 영업형 TM 콜센터 업무에 배치가 된 것은 부적절한 실습 장소 선정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고객 응대와 상품 권유 그리고 해지 방어 등의 업무는

고압적인 실적 경쟁과 목표 미달 시 질책으로 이어져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업무 환경이었는데

하루에 수십 건 이상 고객에게 전화를 해야 했으며 욕설과 폭언에 노출되었고

실습생임에도 실적 기준이 적용되어 실적 부진 시 관리자의 질책과 무시, 모욕적인 언행에 시달렸습니다.

A양은 학교 측에 실습 중단 의사를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계속 버텨야 한다', '학교를 위해 나가 달라'는 식의 실습 지속을 강요했고

담임교사와 교장 등도 책임 회피 또는 묵살했습니다.

결국 A양은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며

유서에는 고통과 학교 그리고 실습처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2017년  KBS,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에서 사건을 보도를 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면서

진보 교육단체와 노동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현장실습 폐지 및 개선을 촉구하는 운동이 확산되어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에 제도 재검토를 요구했습니다.

또한 학생 주도의 시위가 발생해 전국 단위로 실습을 거부하는 운동이 확산되었는데

실습생 보호를 위한 '현장실습생 권리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교육부는 2017년 2월 당시 교육부 장관인 이준식이 유족을 만나 공식 사과를 했고

3월 산업체 현장실습 운영을 전면 재점검 지시했으며

4월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 도입을 발표

2017년 하반기에 위험업종 실습을 제한하고 직무 적합성 기준을 강화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현장실습생도 '근로자성' 여부 판단 대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강화했고

실습처의 안전과 노동환경 점검을 확대했으며

실습생에게 근로계약서 작성 권장하고 체불임금 발생 시 근로감독 대상화를 하게 됐습니다.

또한 관할 교육청인 전북교육청은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A양의 실습 배정과 지도 과정에서 교사의 방관적 태도를 확인했으며

실습처가 실습생을 정식 인력으로 활용한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이후 도내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전면 중단하고 정비를 했으며

피해 학생에 대한 심리상담과 유족지원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사건 이후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 제기와 개편 논의가 이어져

노동권, 학생 인권, 직업교육 정책 등 여러 영역에서 후속 조치가 있었지만

일부 실습처에서는 여전히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실적 중심 문화와 감정노동 강요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 많고

교육청의 관리 인력 및 시스템의 한계로 형식적인 실습 평가서, 실습일지 조작 등이 지속되는 문제와

취업률을 실적화하는 교육 시스템이 여전해

실습을 거부하면 학교 취업률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반복하고 있는 데다

실습생의 '근로자성' 인정이 여전히 불명확해

산재나 노동청 신고 과정에서 학생 신분이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등

부분적인 개선에 그쳤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 명의 소희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였다

영화 '다음 소희'는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상영되며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사건이 다시 조명되었는데

'이후 제도는 진짜 바뀌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사회에 재점화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방관의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칩니다.

피해자에서 관찰자로 시점을 바꿔 구조 비판자로의 전환을 연출했으며

실제 피해자의 현실을 현장감 있게 묘사해 충격적인 재현을 연출합니다.

특히, "괜찮니?"라는 질문이 반복되는데

이는 형식적 관심과 실제 방관의 괴리를 보여줘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존재했던 고통에 초점을 맞춰 현실을 고발하고 있으며

후반부의 구조적 고발 파트가 다소 무거워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자극 없이 차곡차곡 쌓이는 분노와 무력감을 잘 느낄 수 있는 전개가 오히려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는 한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소녀가 왜 죽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죽음을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실습생을 보호하지 못하는 교육시스템과 청소년을 노동자로 쓰고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감정노동과 착취를 일상화한 자본주의 구조를 보여주면서

'이건 개인의 불행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단지 사회고발 영화가 아니라 '시스템 속 방관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를 흔드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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