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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뒤주에 갇힌 건 아들뿐이었을까

by hanulzzinggu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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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가둔 비극, 사도의 진실을 묻다

감독: 이준익

출연: 송강호, 유아인

장르: 사극, 드라마

개봉일: 2015년 9월 16일

러닝타임: 125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애비가 산다!"

재위기간 내내 왕위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어긋나는 세자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어린 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된 아들.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사도는

영조의 바람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됩니다.

왕과 세자로 만나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잇지 못한 운명,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가 시작됩니다.

왕이었기에 아버지일 수 없었던 영조

영화 '사도'는 제목 그대로 조선 왕실 최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사도세자 뒤주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탕평책'을 추진하며 효율적인 정치를 하려 노력했고

신중하고 냉정한 성격 이었는데 아들 사도세자에게는 유독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1735년 출생인 사도세자는 영조가 41세에 본 늦둥이 아들이자 유일한 적장자였습니다.

유년기에는 총애를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는데

아버지 영조의 지나친 기대와 잦은 질책이 사도세자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고

분노조절 장애, 환청,복식 집착 등의 정신질환 증상을 보였다는 기록도 존재하며

자주 신하들을 죽이거나 위협하고, 궁녀를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는 정황도 있습니다.

1762년 5월 영조는 사도세자의 폭력성과 정치 불안 요소를 계속해서 우려했는데

결국 신하들이 사도세자의 행동 문제로 계속해서 탄핵을 상소했고

영조도 사도세자의 정신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고민 끝에 사도세자를 폐세자로 강등했습니다.

영조는 유교 윤리에 따라 직접 아들을 처형할 수는 없었지만 '뒤주에 가두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그것은 사실상 사형 선고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5월 13일 사도세자는 뒤주에 가둬졌고 8일 후인 5월 21일 향년 29세의 나이로 끝내 사망했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아내인 혜경궁 홍 씨는 평생 마음의 병을 앓았으며

당시 궁중의 상황과 남편의 변화, 그리고 영조와의 갈등 등을 감정적으로 기록한 한중록을 집필했습니다.

사도세자의 사망 2년 후인 1764년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

훗날의 정조는 세손으로 공식 책봉되어 사도세자에게 '장헌세자'라는 시호를 부여했고

1776년 즉위 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 실현을 위해 화성 건립을 추친했습니다.

정조의 사후 훗날 고종 때는 사도세자를 '장헌황제'로 추촌 해 명예회복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역사가 가둔 비극이 된 아버지와 아들

다른 대중매체에서도 많이 다뤄지는 소재인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주로 정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억울한 죽음 또는 부자간 비극으로 자주 보여졌는데

영화 '사도'에서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사도세자의 정신적 고통과 영조의 정치적 고뇌를 교차 편집해 보여주며

아버지가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강조했고

뒤주에 갇혀 죽기까지 8일 동안 사도세자의 기억과 삶이 플래시백처럼 펼쳐졌습니다.

영화는 영조의 높은 기준과 칼 같은 질책 속에서 자란 사도가 자신답게 살지 못하고

계속 왕세자답게 살기를 강요받아 이내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아들의 고통을 보여줬고

또한 아들을 사랑하지만 국가와 정치가 우선인 군주의 운명을 안고

사도세자를 죽이기 전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인간이기 전에 왕이어야 했던 영조의 고뇌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네가 내 아들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영조의 대사는

군주의 아들로 태어난 죄를 상징하며 권력과 혈연의 모순을 나타냈습니다.

영화 '사도'는 단순히 비극적 죽음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너무나 큰 기대를 했을 때

그 기대가 어떻게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왕실 내부도 인간의 감정과 권력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사도는 역사의 피해자인 동시에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아들이었고

영조는 냉정한 폭군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무너진 아버지였습니다.

실제 사건이 지닌 무게를 감성적으로 풀어낸 '사도'는

오늘날의 가정과 교육 그리고 정치를 돌아보게 하며

동시에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 부족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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