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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존재했으나 존재할 수 없었던

by hanulzzinggu 202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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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이름들의 진실

감독: 강우석

출연: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장르: 밀리터리, 시대극

개봉일: 2003년 12월 24일

러닝타임: 135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 31인의 살인병기 '실미도 부대' 탄생

"주석궁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의 임무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인간대접받을 수 없었던 강인찬 역시

어두운 과거와 함께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수감됩니다.

그런 그 앞에 한 군인이 접근, '나라를 위해 칼을 잡을 수 있겠냐'는 엉뚱한 제안을 던지곤

그저 살인미수일 뿐인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는데...

누군가에게 이끌려 사형장으로 향하던 인찬,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인천 외딴 부둣가

그곳엔 인찬 말고도 상필, 찬석, 원희, 근재 등 시꺼먼 사내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그렇게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에 기관원에 의해 강제차출된 31명이 모입니다.

영문 모르고 머리를 깎고 군인이 된 31명의 훈련병들,

그들에게 나타난 예의 그 군인은 바로 최재헌 준위,

어리둥절 한 그들에게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는 한 마디를 시작으로

냉철한 조중사의 인솔하에 31명 훈련병에 대한 혹독한 지옥훈련이 시작됩니다.

'683 주석궁폭파부대'라 불리는 계급도 소속도 없는 훈련병과 그들의 감시와 훈련을 맡은 기간병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구호하에 실미도엔 인간은 없고

'김일성 모가지 따기'라는 분명한 목적만이 존재해 갑니다.

명령은 있었고 책임은 없었다

영화 '실미도'는 '683부대', 즉 실미도 공작부대라 불렸던 남한 특수부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정찰조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김신조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으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군 내부에서 보복 작전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앙정보부 (현 국정원) 주도로 북한 김일성 암살을 목표로 하는

비밀 공작부대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683부대'입니다.

당시 군사지역이었던 무인도 인천광역시 옹진군 실미도에

대부분 전과자, 빈민층, 무직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으로 구성된 약 31명이

'특수임무를 완수하면 신분을 보장해 주겠다'는 약속을 입대해

극도로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1971년 당시 남북 화해 무드와 더불어 김일성 암살 계획이 중단되었고

683부대는 실질적으로 이용가치가 없어져 방치되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임무도 없고 사회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현실에 분노한 부대원들은

1971년 8월 23일 실미도를 탈출해 무장한 채로 서울로 진입했습니다.

인천과 서울 사이에서 군과의 총격전이 벌어져 대부분은 사망했으며

생존자 4명은 군사재판 후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당시 정부는 '무장공비 사건'으로 위장해 발표했으며 언론도 통제되어 진실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1999년 유족들과 진실을 알게 된 언론인들의 취재로 683부대의 실체가 점차 드러났습니다.

2003년 영화 '실미도'의 개봉으로 이 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고

2006년 유족들이 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 손해배상 판결이 났으며

2010년 정부가 공식 사과하며 국가기록원에 683부대의 자료가 등록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은폐된 국가폭력의 상징으로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민주적 절차와 인권의 부재가 만든 비극입니다.

버려진 존재들의 기록

영화 '실미도'는 철저히 소외되고 버려진 인간들의 분노와 절망을 통한

감정 몰입이 뛰어난 서사 구조로 배우들의 사실적이고 강렬한 연기와

거칠고 사실적인 훈련 장면과 전투 씬을 통해

국가 폭력과 인간 소외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단 진실에 대한 심층적 파헤침보다는 인간 드라마 중심으로 흘러갔으며

일부 허구적 설정으로 인해 메시지가 약간 희석되기는 했지만

국가가 사람을 '도구'로만 여긴 비인간성에 대한 고발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국가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

인간이 얼마나 손쉽게 이용되고 버려지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줬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부대원들이 서울로 진입하면서 느끼는 도시의 풍경이었습니다.

그곳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대한민국'이지만 누구도 그들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공허한 기계음, 무심한 사람들, 그리고 총구.

이 장면은 '우리가 누구를 위해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을 이용하고 죽음으로 몰아간 시스템에 대한 분노와

그들이 이름조차 없이 사라져야 했던 현실에 대한 슬픔을 느끼며

"지금의 우리는 이들과 얼마나 다를까?"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임무나 효율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인데

국가 폭력에 대한 집단적 망각은 다시 반복될 수 있기에

역사적 진실은 영화나 예술을 통해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체제가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는 방식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의문의 여운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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