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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현실

재심, 진실 앞에 눈 감은 법정의 시간

by hanulzzinggu 2025.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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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진실이 법정에 선 날

감독: 김태윤

출연: 정우, 강하늘, 김해숙, 이동휘, 한재영, 이경영

장르: 법정, 사회고발

개봉일: 2017년 2월 15일

러닝타임: 119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돈 없고 빽 없는 벼랑 끝 변호사, 10년을 살인자로 살아온 청년

진실을 찾기 위한 두 남자의 진심 어린 사투가 시작됩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택시기사 살인사건 발생.

유일한 목격자였던 10대 소년 현우는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누명을 쓰고 10년 동안 감옥에서 보내게 됩니다.

한편, 돈도 빽도 없이 빚만 쌓인 벼랑 끝 변호사 준영은

거대 로펌 대표의 환심을 사기 위한 무료 변론 봉사 중 현우의 사건을 알게 되고

명예와 유명세를 얻기에 좋은 기회라는 본능적 직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현우를 만난 준영은 다시 한번 정의감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현우는 준영의 도움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믿어볼 희망을 찾게 되는데...

균형 잃은 저울이 만든 비극

영화 '재심'은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2000년 8월 10일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복부를 흉기로 찔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인근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15세 소년 최모 군을 용의자로 지목했는데

경찰은 목격자 진술 없이도 최 군을 범인으로 몰아갔으며

폭행과 협박, 유도 질문으로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이는 보호자 없이 미성년자를 장시간 심문해 변호인 참여 없이 진행된 조사로

수사 초기부터 단일 범인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조작된 진술을 유도한 무리한 수사였습니다.

결국 최군은 '오토바이를 훔치러 가다가 택시기사와 시비가 붙어 칼로 찔렀다'고 자백했지만

흉기,지문,혈흔 등 물증이 전혀 없었으며

2003년, 진범으로 추정되는 김 모 씨가 다른 사건으로 검거되면서

'약촌오거리 살인은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김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재수사와 재심을 거부했고

결국 최군은 2010년까지 10년을 복역하게 됩니다.

최 군은 출소 이후 극심한 우울증, 대인기피, 트라우마에 시달렸으며

전과 기록, 사회적 편견으로 안정적 직장을 구하지 못한 것은 물론

가족조차도 초반에는 그를 믿지 못해 긴 시간 동안 외롭게 싸워야 했기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심을 청구했고 변호사 박준영과 시민단체가 사건을 조사해

무관심한 사회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사건 초기 언론은 소년범의 강력 사건 정도로 보도했으며

2003년 김 씨의 자백은 언론이나 사회적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2013년 재심 청구 이후 주요 언론사들이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SNS와 커뮤니티에서 '억울한 옥살이', '사법 정의'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확산되었습니다.

2016년 11월 17일 전주지방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직접증거가 없고, 수사기관의 강압수사 정황이 있다'며 최 군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도 항소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재심 이후 최군은 법원에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 2020년경 약 13억 원의 배상을 판결받았고

사법피해자 지원 단체와 연결되어 치료 및 심리 상담 지원을 받았습니다.

방송 인터뷰 등에서 '억울한 세월은 되돌릴 수 없지만 이제는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현재는 일반인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으며 간혹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사법 정의 관련 강연 등에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깊은 충격을 준 대표적인 사법 피해 사건으로 여러 문제점을 보여주었는데

미성년자에 대한 인권 침해와 진범이 자백했음에도 수사기관과 법원이 판결을 번복하지 않은

사법기관의 책임 회피, 억울함을 밝히기까지 16년 그리고 무죄 판결까지 10년이 걸린

재심 제도 운영의 한계 등이 있습니다. 

이후 재심 관련 기준 완화 논의 촉진과 미성년자 수사시 변호인 참여 보장이 강화되었으며

검찰·경찰 수사 관행 개선과 인권 보호 조치의 확대가 이루어졌습니다.

판결은 있었고 정의는 없었다

영화 '재심'은 단지 억울한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닌

대한민국 사회와 제도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 고발 영화입니다.

실화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인물과 사건의 설정을 약간 비틀어

보다 감정에 호소하고 보편적 공감을 유도하는데

특히 변호사 준영의 내적 변화와 현우 가족의 절망적 현실은

영화적 장치로서 강력하게 작용해 실화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했습니다.

영화는 법정 스릴러 보다는 감정 드라마에 가까운데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정의의 본질'은 분노보다 공감으로 전달되어

그것이 이 영화의 한계이자 동시에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 같습니다. 

영화 '재심'은 정의에 대한 영화이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민낯에 대한 고발장으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

그런 판결이 애초에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입니다.

억울한 판결이 있다는 건 그 사회 전체가 위험하다는 경고이며

사건 당시 경찰,검창,법원,언론,시민 그 누구도 소년의 억울함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침묵과 무관심으로 만든 폭력이었습니다.

무죄가 확정되어도 사라진 10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배상과 명예 회복 이상의 제도의 구조적 개혁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우리는 아직도 다른 '최군'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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