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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현실

추격자, 악은 멈추지 않았고 구조는 늦었다

by hanulzzinggu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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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공권력이 만든 비극

감독: 나홍진

출연: 김윤석, 하정우

장르: 범죄, 스릴러

개봉일: 2008년 2월 14일

러닝타임: 123분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

최근 데리고 있던 여자들이 잇달아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조금 전 나간 미진을 불러낸 손님의 전화번호와

사라진 여자들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가 일치함을 알아냅니다.

하지만 미진 마저도 연락이 두절되고...

미진을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영민과 마주친 중호, 

옷에 묻은 피를 보고 영민이 바로 그놈인 것을 직감하고 추격 끝에 그를 붙잡습니다.

실종된 여자들을 모두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담담히 털어놓는 영민에 의해 경찰서는 발칵 뒤집어집니다.

우왕좌왕하는 경찰들 앞에서 미진은 아직 살아 있을 거라며 태연하게 미소 짓는 영민.

그러나 영민을 잡아둘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공 세우기에 혈안이 된 경찰은 미진의 생사보다는 증거를 찾기에만 급급해하고,

미진이 살아 있다고 믿는 단 한 사람 중호는 미진을 찾아 나서는데...

구조를 외면한 사회의 단면들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으로

유영철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20여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입니다.

정확히는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범행을 저질렀는데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유영철은 과거 절도, 강도, 성폭행 등으로 수차례 복역한 전과자였습니다.

초기에는 부유층 노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시작했으며 이후 성매매 여성 등으로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유영철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개인적인 원한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는데

특히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과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으며

이는 그의 범행 대상 선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피해자를 미리 물색한 후 망치 등 둔기를 이용해 살해했으며

 

일부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하거나 유기하는 등 잔혹한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수사 초기에는 경찰의 대응 미흡과 정보 공유 부족 등으로 인해 범행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는데

2004년 7월, 경찰은 성매매 여성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중 유영철을 용의자로 지목하며 체포했고

체포 후 유영철은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며 추가 범행을 밝혔습니다. 

총 20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된 유영철은 2005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현재까지 형이 집행되지 않고 수감 중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논의를 촉발시켰는데

일부는 그의 잔혹한 범행을 이유로 사형 집행을 주장했으며

다른 일부는 인권과 사형제도의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건 발생 초기 경찰의 수사 미흡과 정보 공유 부족 등의 문제가 지적되면서

이는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범죄 예방과 수사 체계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특히 성매매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연쇄살인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습니다.

구조하지 못한 사회의 책임

영화 '추격자'는 유영철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는데

전직 형사 출신 포주가 실종된 여성들을 추적하면서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살인범 지영민은 경찰을 사칭하여 피해자를 유인하고 망치를 사용해 범행을 저지르는 등

유영철의 범행 수법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

실제 사건의 긴박함과 경찰 수사의 허점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여 긴장감을 전달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연출력과 긴박감 있는 전개로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영화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까지 드러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의 핵심인 배우들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냈는데

김윤석은 정의롭지 않은 주인공을 입체적으로 그려냈으며

하정우는 희대의 살인마를 섬뜩하면서도 일상적인 인간처럼 표현하여 더욱 충격을 주었습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주제를 더욱 극적으로 각색하여 국가 시스템의 무능을 부각시켰는데

단순한 '선 vs 악'의 구도가 아니라 무책임한 수사기관과 피해자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약자의 구조적 방치 등 다층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피해자가 사라졌는데 경찰도, 국가도, 아무도 찾지 않고

피해자를 찾는 건 범죄자조차 아닌 돈을 잃을 포주뿐인 것을 보여주며

영화 내내 경찰은 엉뚱한 혐의로 피해자를 놓치고

자백까지 받은 범인을 현행범으로도 놓치며 결정적인 시간들을 허비합니다.

실제로도 유영철 사건 당시 성매매 여성들의 실종은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고

경찰 역시 단순 가출로 치부해 버리는 무심함을 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살인범만큼이나 위험한 존재는 무관심과 무능이라는 사실을 들춰내며

전직 형사이자 현재는 인신매매를 하는 포주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권력과 도덕의 이중성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국가조차 이룰 수 없는 정의 구현이 법의 바깥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매우 씁쓸했습니다.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구조는 없고, 구조는 있지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추격자'가 사회에 던진 근본적 질문입니다.

영화는 말합니다.

'국가가 무기력할 때, 누가 약자를 지킬 수 있는가?'

'당신이 사라져도, 과연 누가 당신을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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