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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현실

영화 살인의 추억, 끝까지 잡히지 않는 무엇

by hanulzzinggu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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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기다리는 시간의 얼굴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김상경

장르: 범죄, 추리

개봉일: 2003년 4월 25일

러닝타임: 132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986년 경기도 화성군. 젊은 여인이 무참히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2개월 후, 비슷한 수법의 강간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일대는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한 범죄의 공포에 휩싸입니다.

사건 발생지역에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수사본부는 구희봉 반장을 필두로

지역토박이 형사 박두만과 조용구, 그리고 서울특별시 시경에서 자원해 온 서태윤이 배치됩니다.

육감으로 대표되는 박두만은 동네 양아치들을 족치며 자백을 강요하고,

서태윤은 사건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지만,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은 처음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용의자가 검거되고 사건의 끝이 보일 듯하더니,

매스컴이 몰려든 현장 검증에서 용의자가 범행 사실을 부인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구 반장은 파면당합니다.

수사진이 아연실색할 정도로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살해하거나 결박할 때도 모두 피해자가 착용했거나 사용하는 물품을 이용합니다.

심지어 강간 살인의 경우, 대부분 피살자의 몸에 떨어져 있기 마련인 범인의 음모조차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후임으로 신동철 반장이 부임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박두만은 현장에 털 한 오라기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근처의 절과 목욕탕을 뒤지며 무모증인 사람을 찾아 나서고,

사건 파일을 검토하던 서태윤은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범행대상이라는 공통점을 밝혀냅니다.

선제공격에 나선 형사들은 비 오는 밤에 여경에게 빨간 옷을 입혀 길을 걷게 하고 함정 수사를 벌입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돌아오는 것은 음부에 우산이 꽂힌 또 다른 여인의 사체.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다시 감추고 냄비처럼 들끓는 언론은

일선 형사들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형사들을 더욱 강박증에 몰아넣습니다.

추억이 되지 못한 이야기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입니다.

사건 발생 기간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이며

피해자는 총 10명의 여성으로 1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는 다양했고

범죄 유형은 강간 후 살해로 성폭행 흔적이 대부분 확인되었는데

일부 피해자는 끈이나 스타킹, 속옷 등으로 결박 또는 목 졸림이 발견되었습니다.

제1차 사건은 1986년 9월 15일 피해자는 71세 여성으로 논두렁에서 발견되었으며 사인은 질식사.

제2차 사건은 1986년 10월 20일 피해자는 25세 여성으로 특징은 스타킹으로 목이 졸린 것이며

제5차 사건은 1987년 1월 10일 피해자는 19세 여성으로 집 근처에서 실종되었는데 성폭행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제9차 사건은 1990년 11월 15일 14세 여중생이 피해자이며 손과 입이 묶인 채 발견되었고 신체 훼손이 있었습니다.

제10차 사건은 1991년 4월 3일 69세 여성이 피해자로 나중에 모방범죄로 판명되어

총 10건의 사건 중 1건은 모방범죄로 범인이 다름이 밝혀졌습니다.

수사 당시 수사 인원은 200만 명이었으며 지문 2만여 명을 채취했고 용의자 3000명을 조사했으나 범인 특정을 실패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한계로 DNA 감식 기술이 미흡했으며 무고한 사람들이 강압 수사를 통해 허위 자백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제8차 사건의 범인으로 윤모 씨(당시 22세, 지적장애인)가 억울하게 20년을 복역한 것입니다.

2019년 7월 국과수에서 최신 DNA 기술로 미제 사건을 재검토했는데

화성 사건에서 검출된 DNA가 1994년 청주 처제 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의 DNA와 일치함을 확인해 30년 만에 범인의 실체를 규명했습니다.

이춘재는 1963년생으로 화성 지역 거주자였으며

1994년 청주에서 자신의 부인을 도와주던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복역 중이었는데

경찰의 재조사 과정에서 화성 사건 10건 중 9건을 포함해 총 14건의 살인과 30건 이상의 강간 및 성범죄를 자백했습니다.

이후 무고하게 복역한 윤모 씨는 2021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국가로부터 25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으며

경찰은 30년 넘는 수사 실패에 대해 공식 사과했고 여론은 강압 수사와 인권 침해에 대한 비판이 커졌습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대한민국 범죄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미제 사건으로 꼽혔으며

이후 범인의 자백과 DNA 증거로 해결되기까지 30년이 걸렸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관심 덕분에 결국 진실이 드러났으며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을 구제하고 실체적 진실에 다가간다는 점에서 국민적 의미가 컸던 사건입니다.

비극은 지나도 질문은 남는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단순 범죄 수사극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부재,

시대의 한계 그리고 개인의 무력감을 담아냈고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면서도

영화로서 독자적인 서사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화와 현실 모두 초동수사 실패와 과학수사의 부재 그리고 강압수사의 만연함을 드러냈으며

수사기관의 자존심과 체면 유지가 오히려 사건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어

범인을 잡지 못한 30년 동안 유족들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했고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국가의 무능은 개인의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로

봉준호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현실성 높은 연기는 범죄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가 "그냥 평범한 얼굴이었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범인의 흔적을 기억하는 장면은 사라진 정의와 국민의 불안감을 상징했으며

'범인은 아직도 어딘가에 있다'는 현실의 공포를 강렬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이 영화 이후 화성 사건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붙고 경찰 수사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도 확대됐으며

실제로 '살인의 추억' 이후 미제사건의 재조사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영화는 서사와 메시지를 위해 여러 사건을 압축하고 일부 재구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까워지게 되는 아이러니한 효과를 경험했습니다.

영화는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지를 보여주는 사회 고발극이며

현실에서는 30년이 지난 뒤 진범이 밝혀졌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와 억울한 이들,

그리고 기억하려 했던 시민들의 이야기가 결국 정의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영화와 현실 모두 진실에 다가간 걸작으로 '허구를 통해 진실은 말한다'는 영화의 힘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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